
디자인_변혜은
『두꺼운 문』은 개인의 할머니에 대한 기록의 합이다. 두터운 문이 닫힌 그 너머- 혹은 그 내부에- 놓인, 낱낱의 사람을 응시한 결과물들을 사진, 판화, 회화 그리고 각자의 텍스트를 엮어 배치하였다. 두 작가는 대상과 소유했던 기억 또는 사물의 내면을 더듬어보는 것을 넘어 부재한 정경(情景)이 담긴 회화 그리고 언어의 표면을 새기는 방식으로 ‘그곳’을 말하기로 했다. 다만 이 기록들이 다가올 부재의 구멍을 채우거나 혹은 개인의 상실을 위해 필요했던 것인지도 이번 전시를 통해 구분해보고자 하였다. 그들이 사용한 사물이나 공간 또는 일상의 일부를 보존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선명히 보기를 원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을 보는 기록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고백해야 할 시점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우리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뿌리나 줄기라고 인식된다. 그리고 마치 가족이나 공동체를 상기시키는 원점의 존재로 이야기하곤 했다. 최근 몇 년간 빈번히 논의되고 있는 주제들 중 그녀들과 비슷한- 어쩌면 동일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들- 할머니-에 대한 언급이 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다. 다만 우리는 그들이 우리의 주된 핵심을 가로지르고 있는, 그리하여 결국 어떤 장소로 부르고 마는 원점의 존재- 혹은 장소-로 바라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내 그 시선은 삶을 관통하는 태도를 통해 엄중히 자신의 모습도 함께 드러나게 된다. 결국, 그 대상과 나를 동일시하는 단계를 거쳐야만 마침내 자신을 분리할 수 있으며 이 경험으로 다시 현재의 상태를 진단하고 대상과의 관계의 순서가 끝에 왔음을 혹은 끝이 났음을 인지한다.
김은혜는 돌봄의 위치가 전복된 상황에서 정신과 신체의 제스처와 같은 신호를 포착한 것들로 할머니에 대한 애정과 시선을 드러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마지막 관찰 기록이 될-상례(喪禮)의 과정 중 마주친 일부분을 배치했다. 상례는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수반되는 모든 의례로, 단순히 죽음을 인간의 생물학적 정지가 아닌 영혼이 현세에서 타계(他界)로 옮겨간다고 믿는 관념들이 일정한 절차나 행위에 담겨 표현되는 것이다. 일상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들의 약속된 행동과 가까운 가족의 표정이나 몸짓을 여러 낱개의 장면으로 나눠 건조하고 절제된 회화의 톤으로 서술했다. 죽음을 둘러싼 시공간에서 자라난 비일상적 화면과 또 다른 형태의 연속성에 대한 상념의 흔적을 통해 누군가의 ‘부재함’을 은유적 상태로 나타내고자 하였다. 또한, 매만질 수 없게 된 대상의 살갗을 기억의 촉각-이미지로 변환한 작업은 가족사진으로 빼곡했던할머니의 방 벽면 일부분과 어렴풋하게 닮은 모양새로 설치했다. 두 작업의 병치는 분명히 사라진 것과 그럼에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그 중간에 대한 기록으로 볼 수 있다.
변혜은은 신앙을 강요하여 교회에 대한 증오심을 심어주었지만 무한히 사랑을 주었던 할머니에 대해 기록해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성인이 되어 진실로 내면에 신앙심이 자리 잡게 된 후 교회라는 불편함을 선사했던 할머니에 대해 재고해보기로 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을 때보다 한 인물에 개인으로 접근하며 나눈 몇 년간의 대화와 교감을 통해 할머니의 드러나지 않았던 사랑과 인내, 영성 그리고 외로움과 상처를 알게 되었다. 그간 할머니의 오브제를 끄집어내고 기억 속 집의 구조물을 재현함으로써 인물과 관련된 장면과 문화적인 습성들을 보존하려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시간의 유한함 속에서 잡아둘 수 없음을 깨닫는 일의 연속이었다. 이번 『두꺼운 문』에서는 그간의 노력들을 갈무리하고 ‘있는 그대로’를 실천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였다. 할머니의 시간을 의미하는 사진 이미지와 이제는 펜을 잡지 않는 노인의 서체를 판에 새기며 왜곡 없이 기록하는 방법을 택했다. 판화의 경우 특성상 종이에 찍어내기까지 원판의 상태는 이미지가 뒤집혀 있는데, 때로 서체들을 거꾸로 따라갈 때마다 결국 글씨를 쓴다기보다 정체불명의 꼬부라진 이미지를 새기게 되며, 원작자의 서체를 그대로 따라가더라도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이처럼 써내려가는 행위에서 새기는 행위가 되는 것이 ‘알고자 하는 것’, ‘남기는 것’으로 간주되기 보다 ‘알지 못하는 채로 있는’, 그리고 ‘되돌릴 수 없음’으로 읽히길 원한다.
이 전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분리는 죽음과 같은 물리적 분리보다는 보호나 관심, 애정, 승인의 욕구 등을 얻는 정서적 의존(Emotional dependence)상태에서 점차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으로 집필한 『내밀한 겹』에서도 드러나듯 대부분의 어린 시절은 이러한 형태의 기억과 순간들로 긴밀히 연결되고 교차되는 것을 확인했다. 정도는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지난 작업을 통해 그들을 보존하려 했던 행위가 남겨질 자신을 위한 것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간의 기록 또한 대상의 상실이 곧 자아의 상실로 변형되지 않도록 조금씩 물러나 보는 모습으로도 묘사될 수 있다. 그럼에도 ‘할머니’라는 소재는 논리적이지 못한 어떠한 지점을 자극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과 해석이 묻어 있어도 결국 가족 공동체에서 중요한 인물이 끼치는 개인의 사회적 사건들이기에 우리는 그것에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각자만이 열 수 있는 그 문- 곧 그 사람은, 어김없이 자신을 반겨주고 품어주던 장소로 인도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곳을 ‘할머니’라 기억하며 자신을 비춰볼 것이다. (글 : 김은혜)
.jpg)
.jpg)
.jpg)
.jpg)
.jpg)
영상 및 사진_고정균
촬영 및 편집_고정균